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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Teddy 본문

AVGS/HL

비전완다 _ Teddy

rabbitvaseline 2015. 10. 1. 20:40




나타샤 로마노프의 사무실 책상 위에 검정색 테디베어가 장식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었다. 복슬거리는 털을 가지고, 마치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날카로운 눈을 한 테디베어를 그녀가 샀을리는 만무하였기 때문에, 모두들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선물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타샤의 사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꽤나 귀여운 테디 베어라고 곰인형을 칭찬하곤 하였다. 단 둘을 제외하고.

하나는 그런 귀여운 감정이란 것을 배우고 있는 안드로이드요, 또 하나는 오히려 테디베어를 사랑할 것만 같은, 어벤져스의 여자들중 최연소 멤버였다. 완다 막시모프는 나타샤의 사무실에 들어가고나서 테디베어를 발견한 순간 몸을 굳히고 말았다. 그녀는 잠시 움직이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나타샤에게 다가갔다. 나타샤 또한 그런 완다의 행동이 내심 불안하기는 하였지만, 다행히도 완다는 괜찮았는지 거짓없는 미소를 취하며 나타샤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 이야기를 비전 앞에서 꺼내었을 때, 비전의 머릿속에서는 며칠전에 있었던 데이트가 떠올랐다. 그는 인간으로 분장하고나서 완다와 시내로 몇번 데이트를 나간 적이 있었다. 같이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그런 연인들간의 평범한 데이트였고 그때마다 상당히 즐거워하며 돌아다녔다.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즐겁게 아케이드를 지나갈 때였다. 근대 영국의 상점가를 모방했다는 아케이드를 지나면서 둘은 유리창에 비친 상품들을 보고 있었다. 헌책방, 포목점, 유기농야채가게 등등 뉴욕의 시내에서는 보기 힘들 물품들을 보던 참이었다. 

"완다?"

그녀의 발걸음이 일순 어느 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가게 유리창에는 그 옛날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아기곰을 풀어주었다는 설화가 담긴 그림이 걸려있었고, 그림 옆에는 그 설화의 주인공을 쏙 빼닮은 작은 곰인형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완다는 마치 먼 옛날에 있었던 일을 보는 것 같이 살짝은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가게 내에 진열되어 있던 수많은 테디베어 곰인형을 향하고 있었다.

"..갖고 싶습니까?"

물론 원한다고만 한다면야 가게 내에 있는 모든 곰인형을 선물할 용의도 있었다. 그는 그럴만한 재력-토니의 블랙카드-가 있었고 그럴만한 사랑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완다는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건너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에게 테디베어 팜플렛을 건네었을 때, 살짝은 찡그려진 그 얼굴이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거 선물하지 않아도 괜찮아, 저번에는 팔찌도 줬잖아..."

"...무섭습니까?"

그 말에 완다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는 제 앞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비전도 그냥 튀어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살고 있던 소코비아에 대한 조사를 계속해서 하고 있었고, 그 중에는 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되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내전에서는 인종청소라는 표어가 메인이었다. 그리고 그 인종청소를 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는 정말로 상상도 하기 힘든 무기까지 만들어졌다. 완다는 비전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테이블 위에 있던 오렌지 주스캔에 시선을 돌렸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비전이 처음일 터였다.

"...처음에는 음료수캔이었어. 딸기향이 나는 음료수였는데 작은 캔 겉에는 딸기에 빨대를 꽂아 마시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있었어. 어릴적에 피에트로가 상당히 좋아했었는데, 어느날 캠프에서 알게 된 친구가 그걸 알고는 그 캔을 갖고 왔어. 피에트로는 친구가 가져왔으니까 좋아했지만, 그래도 친구가 먼저 주워왔으니까 먼저 마시라고 했어. 그 다음은 어쩐지 알겠어?"

완다의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비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한층 날이 선 목소리로 분노를 표했다.

"...어른들이란 항상 그렇지. 다행히도 위력이 약했어. 그 친구는 곧바로 즉사였지만 피에트로랑 나는 다치지 않았거든... 그 곰인형도 마찬가지야. 또다른 친구가 있었어. 엄마 아빠랑 같이 난민캠프로 온 애였는데, 꽤나 사랑을 받았는지 레이스에다 인형을 좋아했어. 원래 10살 정도 되면 인형을 좋아하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하필이면 피난을 오면서 집안에다 인형을 놔두고 왔다는 거야. 그 아이는 매일 슬퍼하면서 인형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었어. 그러다 며칠뒤에 나에게 인형을 주웠다고 좋아하면서 보여주더라고.... 파란색 테디베어였어, 절대로 잊지 않고 있어. 절대로.... 그날 밤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사랑하는 곰인형에게 새로운 이름까지 지어주고 품에 안으면서 잠들었다고 해. 그래서 인형을, 특히 곰인형을 볼때마다 저게 언제 터지나, 라는 생각을 해. 품에 안으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완다는 씁쓸하게 웃으며 음료수 캔의 뚜껑을 땄다. 팍, 하며 작게 캔을 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캔에 입을 대지 않았다. 손의 떨림이 안정이 되지 않아 캔에서 주스가 조금 흘러내렸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캔을 비전이 집어들어 테이블에 올려놓자마자, 그녀는 연인을 끌어당기며 그 품에 머리를 묻었다. 몸이 가늘게 아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심경이 어땠을 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비전은 조심히 완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소코비아의 모델인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하였다. 아마 완다와 피에트로도 저 지옥속을 헤쳐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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