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냇배너베티 _ 향 본문
토르 : 라그나로크 언급 有
"응, 알았어요, 내 걱정은 말라니까요. 네, 걱정말아요. 늦었어요, 이만 끊을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호텔 창밖에 펼쳐져있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베티 로스는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벌써 사흘째, 자신의 아버지는 출장나온 딸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있었다. 미육군 중장인 썬더볼트 로스가 40이 넘은 딸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것은 단순히 그녀가 홀로 호텔방에 머무르기 때문은 아니었다. 베티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코비아 참사를 회상하는 뉴스를 보다가 이내 리모콘으로 화면을 꺼버렸다. 어두워진 화면 사이로 자신의 모습이 비춰져있었다. 한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가 아닌, 생물학에 몸을 바치기로 맹세한 과학자가 검은색 화면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녀는 다시 불빛이 반짝이는 야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레 갖게 된 자유가 아직도 어색한지, 행여나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거리를 보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2주, 2주전에 그녀는 미국방부와 어벤져스의 감시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이유는 명확했다. 감시의 이유가 되는 무엇인가가 우주 저 너머로 사라져버렸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에릭 셀빅의 제자인 제인이 자신의 연인이 사는 '아스가르드'라는 세계를 가르쳐주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말한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로라빛으로 빛나는 터널이 감시망이 좁혀진 브루스 배너를 비추었고, 이내 신화에서 나올법한 기묘한 무늬를 바닥에 남긴 채 사라졌다는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로스장군은 매우 난감해하면서도 조만간 베티에게 가해졌던 감시가 풀릴 것을 암시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내는 편지마다, 메일마다 일일히 확인받아야했던 날들과의 작별이라 생각하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면서도 어딘가 껄끄러운, 그리고 슬픈 구석이 있었다. 베티에 대한 감시가 풀린다는 것은 국방부에서 그의 거취에 대해 어느정도는 알고 있으며,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음은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진상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의문이 풀린 것은 감시가 풀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베티는 우연히도 에릭 셀빅교수의 제자인 제인 포스터와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그 오로라같은 터널이 외계행성인 아스가르드에서 사용하는 포탈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비프로스트, 아스가르드어로는 무지개다리를 뜻하는 포탈을 이용하면 전 우주를 이동할 수 있었다. 브루스 배너가 그 포탈을 타고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제인도 알 수 없었다. 토르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붙히고 있다면서, 그녀는 넌지시 토르가 배너를 피난시켜준 것을 암시해주었다.
그녀는 아마도 배너가 있을 밤하늘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별들은 커녕 달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배너가 있는 곳은 더더욱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언젠가 학생시절 배너와 함께 보았던 밤하늘을 떠올리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다시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무사히 이 지구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어디로 갔고 어떻게 지내는지는 그녀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똑똑-
갑작스레 노크소리가 방안에 울린 것은, 이제 슬슬 마음을 추스르고 잠자리에 들려고 준비하던 때였다. 그녀는 11시가 넘은 것을 확인하고는 무슨 일인지 조심스레 체인을 건 채로 문을 열었다. 이런 낯선 이의 방문은 그동안 지겹도록 받아왔고 어느정도 익숙해져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며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틈사이로 우선 보인 것은 짙게 턱에 드리워져있던 수염이었다. 남자, 라고 본능적으로 긴장의 촉각을 세우려는 찰나, 시선이 얼굴로 올라가자 그녀의 몸은 갑작스레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베티의 몸이 굳어진 것을 보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안녕, 이라고 지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서 들어와."
베티는 재빨리 체인을 빼고는 남자를 방으로 들였다. 남자는 허름한 점퍼차림에 한쪽에는 구부정히 백팩을 짊어지고 있는, 그야말로 부랑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비록 헤어진지 몇년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가 어떤 모습을 하던간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트레스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편안해져서인지는 몰라도 빼빼말랐던 남자의 몸에는 제법 군살이 붙어있었다. 나이도 제법 많이 들어 주름살과 흰머리가 적지 않게 그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수북한 수염과 알굵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 얼굴을, 그 두뇌를, 그 몸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Bruce Banner, 그 11글자의 조합을 얼마나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었던가.
"오랜만이야."
브루스 배너는 다시 인사를 하고는 모자를 벗었다. 수북한 수염과 마찬가지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도 제대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베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꽤나 이 상황에 놀랐고, 진정하기에는 힘들것 같다는 판단에 몸좀 씻겠다며 그녀의 허락없이 욕실로 들어갔다. 하긴, 옛날에는 서로의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던 때도 있었다. 서로의 집열쇠를 공유하고, 결국에는 한쪽의 집은 서재로 다른 쪽의 집에서 같이 잠을 잤다. 그 꿈만 같던 시절, 베티는 문 너머로 들리는 물소리에 그런 아득한 과거를 떠올리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하의만 입은 채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었다. 축 처진 머리카락은 조금 전보다는 정돈되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면도를 했는지 수염은 어느새 말끔하게 사라져있었다. 고마워, 그쪽에서는 제대로 수염을 깎을 수가 없었거든. 그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으며 말하였다. 얼마만이던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
"왜 아무 말도 안해? 거의 7년? 아니 8년만인가? 오랜만이지, 이렇게 이야기하는건."
"...커피 마실래?"
긴장감이 감도는 공기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꺼낸 말에 그는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티는 몸을 돌려 전기포트에 물을 담고 스위치를 올렸다. 그녀가 인스턴트 커피를 꺼내 잔에 넣는 동안 배너는 가방안에서 셔츠를 꺼내입고는 방 한켠에 있던 소파에 앉았다. 그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긴장되어 베티는 하마터면 숟가락을 놓칠 뻔 했다. 챙, 하고 컵받침에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에 그녀의 몸이 움츠려들었다. 왜 이리 긴장이 되는걸까? 그렇게나 보고싶었던 사람일텐데 말이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아. 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를 녹이면서 그녀는 깨달았다. 브루스 배너는 변했다. 그 이전보다도 더 여유로워졌고 더 초조해졌다. 몇년간의 뉴욕생활과 소코비아참사, 그리고 그 이후의 도피생활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깨닫자, 그 긴장감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과 더불어 그의 낯설어짐에 대한 것임을 알아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려다 이내 멈추고는 배너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도 여유로운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오랜만이야, 브루스."
그렇게나 부르고 싶던 이름이 내뱉어지자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테이블에 커피를 놓고는 배너의 반대편에 몸을 앉혔다. 그는 이 상황이 사뭇 어색한지 몇번 시선을 맞추지 못하다가, 이내 안경을 쓰고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노안이 왔나보네, 라는 베티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쉽게도 난 아직 오지 않았어."
"다행인거야, 애석하게도 '그 사람'은 노안은 해결해주지 못했더라고."
그는 쓴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셨다. 언제 저렇게 헐크에 대해 언급을 하게 된거지? 베티는 놀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안타깝네, 다른 건 다 해결되면서 말이야."
그러게, 얕은 웃음소리가 커피향에 사그라졌다. 배너의 그 말 이후로 둘은 아무 말도 내놓지 않았다. 배너가 고작 이런 시시한 잡담을 하려고 이 곳에 온건 아니란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부러 감시망이 풀린 지금 찾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배너는 몇번 뜸을 들이다 다시 커피 한모금을 넘겼다. 씁쓸하면서도 향긋한 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우다가 옅어져갔다. 그 향이 사라지는 순간, 배너는 한번 눈을 깜빡이고는 예전에 사랑하던 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녕을 고하러 왔어."
그거였던가, 행여나 잔이 떨어질라 베티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 말에 심장은 더욱 쿵쾅거리며, 초조해져 가는 그녀에게 다음말을 듣기를 재촉하였다. 제발 말하지 말아줘, 이 말을 어떻게든 내뱉고 싶었으나 그의 결심은 확고해보였다.
"아마 아버지로부터 들었겠지만 지구를 떠나기로 했어. 친구가 도와줘서 다른 곳에서 살아보려고 해. 그곳은 '그 인간'도 나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야. 남들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화를 내도 아무도 피해보지 않는 그런 곳."
베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옷자락을 붙잡은 그녀의 손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다시는 이 곳으로 돌아오지 않을거야, 사실 돌아올 수도 없고. 지금 여기 있는 것도 들키면 곤란해져서. 추방, 인거야."
"...말도 안돼."
"베티."
몇년만에 그가 부르는 이름이던가. 그녀는 그 단어 한마디로 희열에 빠졌다가 이내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다 이내 그의 표정을 보고는 허탈감에 평안해졌다.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는 저런, 너무나도 슬퍼하는 표정으로 부르지 않았었다. 슬픔 속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그녀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랑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배너는 고개를 저었다.
"...나 이 곳에 남아있을 수 없어. 누군가를 피해입히거나 죽이거나 하는 일밖엔 없겠지. 차라리 이 곳을 떠나는게 나을거야."
"네가 무슨 짓을 했다고? 브루스, 모든 건 다 그 헐크 때문이잖아."
그녀는 차마 그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것이 갑작스레 그가 말한 이별인사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사랑이 변했다는 점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배신감일까, 그녀는 속에서 치올라는 분노를 간신히 진정시킨채 말을 이었다.
"..너 아무 잘못 없어, 브루스. 그런데 어째서 그 놈이 한 짓거리때문에 네가-"
"아냐, 베티. 아냐, 모든 상황이 변했어. 모든 일은 '그 남자'가 한 짓이 아냐. 베티, 내 말좀 들어봐. 내 눈을 봐줘."
배너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니, 그 또한 절망에 사로잡히면서도 간신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눈이 그녀의 손을 쳐냈다. 그녀가 그렇게나 사랑해마지않던 갈색 눈동자 속에서 초록빛이 마치 오로라처럼 섞여 흘러들고 있었다. 베티. 그가 눈을 깜빡이자 다시 눈동자가 갈색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베티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아직도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와 난 점점 합쳐지고 있어. 베티, 우리 둘은 점점 섞여들어가고 있어. 그때 그 마녀의 농간인지는 몰라, 하지만 이건 확실해. 더 섞이기 전에 너와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거야. 그래서 온거야. 이젠 그도 나도 서로를 통제할 수가 없어, 우리 둘은 같아지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더더욱 떠나야만 하는거야."
배너는 조곤조곤 그녀에게 이야기했지만, 베티는 그 말중 하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둘이 합쳐지고 있다니? 브루스 배너가 브루스 배너가 아니게 된다니? 생물학도인 그녀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중인격이 아니던가? 분명 헐크는- 생각의 연산이 멈춘 것은 그의 거칠어진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아서였다. 미지근한, 그러나 너무나 그리웠던 그 체온에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서글프게 웃는 모습 속에서 두려움을 읽어냈다. 나의, 나의 브루스. 내가 사랑했던 브루스. 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이마에서 손을 떼내고는 다시 소파에 몸을 뉘였다. 다 식어버려 차가워진 커피를 마시자 정신이 명확해지는 것 같아 베티는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에게도 전했어?"
"아는 사람들은 알아. 일단 어벤져스 멤버들은 다 알고 있고, 내 의견을 수용해주었어. 어차피 여기서도 쫓기는 몸이니까. '한명'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한명, 이라고 말했을 때 그의 표정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운 무언가를 보는, 그러나 애처롭고 아련한 그 표정과 눈빛. 그 눈빛은 분명 옛날에 자신을 향한 것과 같으리라. 다시 절망에 빠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녀는 정신을 놓지 않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 행복을 자신이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가 행복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이나마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한명에게는? 나처럼 간다고 직접 말했어?"
"...그녀에게는 말할 수 없어."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 그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불편해진 분위기에 베티는 테라스창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키려했다. 서늘한 바람이 방안에 들이찼다가 이내 빠져나갔다. 베티는 커피잔을 치우며 그에게 말했다.
"넌 내가 아니라 그녀에게 갔어야 했어. 브루스, 넌 평생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거야."
마치 저주와도 같은 말이었지만 그녀로서는 진심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배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몸까지 돌려있어서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괴로운 심정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몇년이나 그의 곁에서 그를 사랑하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의 모든 마음까지 훑어봤던 사람이었다.
"...아냐, 난 너에게 왔어야 했어. 이 말만은 꼭 전하려고 했거든. 고마워, 그리고 미안했어. 앞으로 나때문에 괴로운 일은 없을거야."
그의 목소리 언저리에는 마치 흐느낌같은 기운이 서려있었다. 이만 갈게, 라면서 외투를 입고 다시 모자를 눌러썼을 때엔 애써서 그 기운을 숨기려하는 모습이 보였다. 베티는 등을 돌려 재빨리 현관으로 가려던 그의 옷자락이나마 붙잡으려 했다. 아직 가지 말라고, 조금 더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럴 수도 없으며 그러서도 안되다는 것을.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남자에게 매달리는 것만큼 추한 일도 없는데다, 그것마저 배너를 괴롭힐 것을 말이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럼 잘 있으라는, 전보다는 힘이 빠진 목소리가 섞였다.
"브루스."
베티는 마지막으로 배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베티의 말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안녕, 이라고 작별을 고해야한다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들었지만 목 안쪽에서 사랑한다는 말에 막혀 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는 몇분 더 대답을 기다린 뒤, 아무 말 없이 복도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도달했을때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목 속에서 그토록 나오지 못한 말이 흐느낌과 함께 쏟아져내렸다. 옅은 커피향기가 바람에 점점 옅어져 바래갔다. 흐느낌 뒤에 간신히 내뱉은 한숨은 끝내 그에게 닿지 못하고, 그대로 방안에서 스러졌다.
주제곡은 캐스커의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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