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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Rum pum pum pum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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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Rum pum pum pum

rabbitvaseline 2015. 12. 21. 23:01




그와 더불어 옆에 서 있던 간호사의 몸까지 덩달아 굳어지고 말았다. 마취약이 들어있는 주사기를 들고 있던 간호사는 옷 너머 복부에 드릴이 찌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의자에 앉아서 환자의 입안 상태를 살펴보던 치과의사의 목에는 메스가 겨누어져있었다. 수많은 붉은선들이 주위를 매우 거칠게 돌아다니며 둘을 위협하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 수술의 주최자이자 수술대가 위치한 빌딩의 주인인 토니 스타크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젠장, 중단합시다."

비속어가 나온데다 매우 떫은 표정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옆에 서 있던 페퍼 포츠는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이런 일이 전에 4번이나 반복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까지 합하면 5번, 5번씩이나 수술은 마취 직전에 취소되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소아를 전문으로 다루는 치과의사-그는 우는 아이의 이빨마저 뺀다는 실력의 소유자였다-였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최후의 수마저 물거품으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간호사는 아주 천천히, 복부에 닿았던 드릴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손을 내렸다. 철제쟁반에 챙, 하고 주사기가 내려놓아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수술대를 채우던 붉은 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토니 스타크는 한숨을 내쉬었고, 페퍼는 두통이라도 일었는지 한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그리고 수술대 의자에 누워 입을 벌렸던 여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녀는 무안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유리창 너머 낙담해있는 토니와 페퍼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완다 막시모프의 5번째 사랑니 발치수술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 ▒ ▒





그녀가 제 왼쪽 아랫턱에 일은 둔통을 느낀 것은 한달 전이었다. 통증은 아주 뭉근하게 일어나서, 처음에는 충치라도 걸린걸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인 피에트로 막시모프는 힘든 유년기덕분인지, 남들보다는 몇배는 더 튼튼한 건치를 자랑했고 스스로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곤 했었다. 결국 그녀는 토니 스타크의 도움을 받아 그의 치아를 정기적으로 관리해주는, 뉴욕에서는 나름 잘 나간다는 치과의사를 타워로 초빙하여 검사를 받기로 했다. 3D 스캐너로 그녀의 두개골과 치아를 스캔하자 의사는 매우 감탄해하며 엑스레이 사진을 완다와 토니에게 보여주었다. 

"이토록 완벽하게 옆으로 누운 치아는 처음입니다."

완다의 두상은 매우 매끈하고 이뻤으며, 그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치아들도 마찬가지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지런히 새로로 정렬되어 있는 아랫니 양 끝에, 이질적으로 수평으로 누운 치아가 자리잡고 있었다. 토니는 그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는 의사의 이렇게 '완벽한' 수평 사랑니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완다는 매우 신기해하면서 의사에게 이것들이 통증의 원인이었냐고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약만 잡는다면 발치를 할 수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럼 다행이긴 하지만... 그쪽도 알다시피 이쪽은 어벤져스의 일원인데다 바깥을 대놓고 나다니기에는 애매한 입장이라서 말입니다... 괜찮겠다면 '수술'은 이쪽에서 하는 것이... 아 물론 장비는 다 지원할테니 걱정은 마시길 바랍니다."

토니는 상당히 떫은 표정으로 엑스레이 사진을 비전에게 보여주겠다며 챙기는 완다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말하였다. 불행히도 막 성인이 된 이 젊은 처자는 수평매복사랑니가 무엇이고 수술이 무슨 뜻인지를 전혀 모르는 듯, 드디어 이 치통에서 벗어난다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어렸을때를 빼고는 치과에는 한번도 안 갔을 완다에게 닥칠 운명에 그는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의사는 토니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로서도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첨단기술을 한번쯤은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셋은 일주일 뒤에 일단 오른쪽 사랑니부터 제거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곧 통증에서 벗어난다는 장밋빛 희망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완다를 보고서도 그는 차마 진상을 말해줄 수 없었다.


진상을 말해준 것은 그녀의 가장 절친한 여자 동료였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한쪽으로 묶고서 서류를 보고있던 나타샤에게 진단결과와 치료일자를 말해주자 나오자, 그녀는 완다의 예상에서 벗어나 혀를 쯧쯧 차며 불쌍한 것, 하는 눈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이면..."

처음에 완다는 나타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고통에 괴로워하는 아기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완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호칭을 쓰며 완다는 대답을 요구했다.

"근처에 났던 사람들 없어?"

그 말에 완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곁에는 항상 전쟁이 자리잡고 있었고, 지옥같은 전쟁통에서는 치아가 아프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게 사랑니라면 더더욱. 충치가 나면 비위생적인 기구로 발치하는 것이, 그녀가 알던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미국, 그것도 첨단을 주도하는 뉴욕인만큼 분명 치료하는 것도 그만큼 덜 아플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타샤는 그런 상황을 눈치채자 절로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참았다. 완다 막시모프는 확실히 뉴욕생활에 적응을 잘 했지만,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었다. 그녀는 엑스레이 사진에서 옆으로 누운 사랑니를 가리키며, 제 앞에서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는 사랑니수술 미경험자에게 말하였다.

"우선 여기에 주사를 놓아. 마취주사인데 이걸 놓아야 아프지 않거든. 그리고 살을 째. 의사에 따라서 한번에 뽑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은 드릴로 조각을 내서 뺐어. 그리고 다시 실로 부위를 묶어. 완다, 수술 끝나고 마취 풀릴때가 제일 아프대."

물론 나는 없었지만, 이라고 말을 끝내며 그녀는 완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마취주사, 라는 말에서부터 완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살을 자른다는 표현에서는 창백해지다못해 낯이 파래졌다. 완다는 토니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던, 그 이유를 그제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말도 안돼."

"괜찮아, 너도 몇번이나 상처를 꿰맸었잖아. 그때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다만 먹는게 힘들어질 뿐이야."

그녀는 바튼이 늘그막에 사랑니를 빼느라 고생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완다에게 이것저것, 살짝은 공포가 섞인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겪었던 고통들보다는 덜할 것이라면서 위안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완다의 파르래하게 변한 얼굴에 혈색은 돌아오지 않았다.


예쁜 두상이라고 연인의 칭찬하는 말도 그녀에게는 안심이 되지 못했다. 비전은 불안해하는 연인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빗어주며 괜찮을 거라고, 당신이라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마치 초콜릿처럼 달콤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치통에는 초콜릿도 고통스러운 법, 더군다나 그렇게 속삭이는 장본인은 정작 완다가 수술을 받을 때엔 그녀의 곁에 없을 예정이었다. 한달동안의 장기출장으로 인해 며칠 뒤에 유럽으로 떠나야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때문에서라도 완다를 품에서 떨어놓지 않고는 그녀의 기분을 달래주려고 했지만, 이미 고통스러운 수술, 이라는 단어에 그녀의 신경은 상당히 예민해져있었다. 

"무섭습니까?"

완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괜찮다고, 이겨내었다고 생각했건만 '수술'이라는 단어에 두려움이 다시 깨어나버린 것 같았다. 비전은 제 연인이 이렇게 의기소침해있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소코비아에 있던 하이드라의 연구소에서 받았던 온갖 실험들과 수술들, 수많은 실험자들중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으로서 그녀가 '수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로키의 셉터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이용하여 실험을 할 때엔, 그 어떤 강력한 마취제도 들지가 않았다. 정신줄을 놓아버릴것같은 고통을 이겨낸 것은, 옆에 제 형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은 결국 모르핀에 중독되어 폐기처분되었다. 맞은편,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갔다. 

완다의 PTSD치료는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일주일에서 2주에 한번씩은 카운슬링을 받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지옥같은 실험실 생활과 그보다 더 지옥같았던 전쟁고아로서의 생활, 그리고 반쪽의 죽음은 아마 그녀가 죽을때까지 그녀의 목을 죄어매고 있을 터였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비전은, 그래서 완다의 곁에 자신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가볍게 떨고 있는 연인의 뒷목에 살포시 입술을 대었다. 향유냄새와 샴푸냄새, 바디클렌져냄새와 체취가 뒤섞여 그의 후각세포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완다, 뒷목에 입술을 댄 채로 조심스레 말하자 연인의 떨림도 멈추었다. 어딘지 모르게 긴장된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다가 이내 흩어졌다. 

"정말 힘들거든 저를 부르십시오."

물론 정말로 부른다고해서 곧바로 올 수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비전은 그 말만이라도 입밖으로 꺼내어야 했다. 여전히 완다는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끄덕임에서 수긍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결국 그 주에 있었던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치과수술대에 누워 의사의 마취주사를 기다리고 있던 완다는, 소독약냄새와 드릴소리를 느끼자마자 메스를 의사에게 겨누었던 것이다.




▒ ▒ ▒





"제기랄."

토니의 입에서 나지막히 욕지거리가 나오자 배너는 얼굴을 찌푸렸다. 벌써 5번째, 완다는 계속해서 마취를 하기 전에 의사와 간호사를 공격했다. 몇번이고 의사를 갈아치웠으며, 심지어는 소독약도 알콜냄새가 없는 종류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수술 특유의 긴장된 분위기가 닥쳐오자마자 그녀는 염력으로 사람들에게 메스나 드릴같은 의료기기들을 들이댔다. 한편 치통이 나은것도 아니라서, 최근에는 진통제로 간신히 통증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치료를 받는데도 그 모양이니... 아니, 내가 좋다좋다 하는 카운슬링 선생까지 데려다놓았는데도 그러잖아... 솔직히 포기하고 싶다고."

"그쪽이 치료받을때엔 1년이 넘게 걸린걸 잊은 모양이죠, 미스터 스타크? 게다가 야매의사까지 데려다가 했었잖아. 솔직히 인정해, 이건 장기전으로 가야할 문제야."

그 말을 마치고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배너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치 좋은 수라도 생겼다는 투였다.

"마취하는게 문제라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지 않아? 차라리 수면마취를 해, 그 편이 더 빨리 풀리겠네."

"고작 이빨 빼는 걸로 수면마취를 하겠다고?"

"고작 이빨 빼는 걸로 그 고생을 할거면 쉬운 방법으로 가라는 얘기야. 게다가 양쪽에 났다면서. 토니, 처음엔 어찌저찌 한다고 쳐도 두번째엔 어떻게 할건데?"

그 말에 토니는 아무 말도 내놓을 수 없었다. 차라리 기계로 수술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오히려 하이드라 연구소에서 잘 썼다는 방법이란걸 알고서는 입밖에 낼 수도 없었다. 수술을 가로막는 것은 이전의 수술로 인한 완다의 기억들이었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 미쳐버려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쌍둥이. 그녀에게 소독약과 차가운 침대는 그야말로 고통의 상징이었다. 그걸 이겨낼 때까지는 다시는 그 자리에 눕기 힘들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 완다는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일정부분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토니로서는 그 점이 매우 신경이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배너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최후의 수로 생각하고 있지."

"차악이 최선보다 빠르게 풀린다면 과감히 선택해야 돼. 그게 그 아이를 위해서도 좋을거야."

순간 토니는 놀라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놓아버릴뻔 했다. 다행히도 비어있던 잔이 테이블에 부딪히기 직전, 그는 그 잔을 잡을 수 있었다. 갑작스런 토니의 이상에 배너도 반응을 보였다. 허탈한 웃음이 토니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언제 그녀를 그렇게 걱정하게 되었어? 예전에는 그야말로 무시일관으로 나가더니."

"...캡이 연락했어, 비전이 걱정한다고. 그것뿐이야."

배너는 떨떠름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토니도 이해했는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토니의 제안에 완다는 어두운 표정으로 몇분간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사이 치통이 악화되면서 제대로 잠자기도 어려워졌다. 그녀는 몇번이고 통증에 일어났다가 잠에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내용은 제대로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짙은 소독약냄새가 잠에서 깨기 직전까지 그녀의 주변에서 돌아다녔다.

"지금 이상태도 힘드니까요."

더군다나 연인이 없는 지금은 더더욱. 이틀에 한번씩은 전화로 소식을 나누고는 있지만 역시 직접 만나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다. 밤에 통증에 시달릴때마다 머리카락을 빗어주던 차가운 손가락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비전도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그쪽에서의 일은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술은 그녀가 쉬는 날인 6일 후로 정해졌다. 수면마취이기 때문에 전날 저녁부터 금식이었고 신경써야 할 점도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이 말도 못하게 괴로웠던 나날로부터 벗어난다는 점만으로도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됐어, 수화기 너머의 비전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똑같았지만 완다는 그 평범한 목소리에서 염려와 안도를 읽을 수 있었다.

"부디 빨리 치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제가 도착할 무렵에는 부디 건강한 모습이길 빕니다."

그리고 초조함. 빨리 보고싶다는, 전화를 마칠때마다 하는 인사를 하고 전화는 끊겼다. 완다는 한숨을 내쉰 뒤 달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작 6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매우 긴 시간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그녀는 혼자서 통증을 이겨내야 할 터였다. 


6일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 상당히 길게 그녀의 곁을 스쳐갔다. 금식하기 전에 든든히 배를 채우고서는 다시금 비전의 근황을 들여다보니, 그는 임무의 마무리를 하느라 도저히 이쪽으로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그녀는 샤워 후 젖은 머리카락을 빗으며 다시금 달력의 붉은 색으로 동그라미 쳐진 숫자를 바라보았다. 수술, 소독약냄새가 절로 맡아지는 것 같아서 기분 자체가 상당히 불쾌했고 토기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지난 6일동안에도 그녀는 기억하지도 못할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고 자고 깨기를 반복했다. 상당히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그녀의 정신이 명확히 맑아졌다.

어쩜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액자속 피에트로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든 생각이었다. 비록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이 꾸고 있는 악몽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이드라의 연구소에 있었을 무렵, 그녀와 피에트로를 스쳐간 수많은 실험자들의 말로, 가 다시금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때마다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공포를 간신히 이겨냈었다. 그 때를 떠오르니, 만약 그 고난의 수술현장에서 피에트로가 곁에 있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생각에 고개를 젓고는 말도 안된다고 치부하며 베드테이블의 불을 껐다. 악몽과 곧 다가올 수술을 앞두고 몸을 뒤척이길 몇십분이 지났을까, 토독, 거리며 무언가 작은 것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그녀는 손을 휘둘러 조심스레 창문의 잠금쇠를 돌리고는 아주 조금씩 창문을 열었다. 창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어린 겨울공기가 춥다고 인식하기도 전에, 매일 들었지만 언제나 그리웠던 목소리가 창문 너머로 속삭였다.

"..완다."

"...비전?!!"

그녀는 급히 문가로 달려가 창문을 열어제꼈다. 입김이 나오지 않는 안드로이드는 그녀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짓더니 차가워진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완다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가 도통 되지 않아 멍한 눈으로 연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놀랐습니까? 미안합니다, 일이 너무 급작스럽게 끝나는 바람에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하지만 분명 아침에만 해도 무리라고-"

"내일이 완다의 수술일이니 어떻게든 끝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냐는 비전의 말에 완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방안에 휘몰아치며 커튼을 펄럭여댔다. 그는 완다가 추워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급히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제 연인의 몸을 꼭 안고는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입술을 맞대었다. 그녀의 몸이 추위로 살짝 떨리자, 그제야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몸이 매우 차갑다는 것을 인지했다.

"미안합니다, 많이 추웠던 모양-"

"아냐. 괜찮아, 이대로 있어줘."

완다는 연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똑딱, 거리는 시계소리가 그의 심장 한켠에서 들리고 있었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제법 안정제 역할을 해주었다. 비전의 몸은 행여나 연인이 추위에 괴로워할까 점점 따뜻하게 열이 올라 이제는 품 안에서 녹진거릴 정도였다.

"....고마워. 사실은 무서웠어."

비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완다의 목소리가 아주 살짝, 가늘게 떨렸다. 그는 그것이 추위로 인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수술'이라고 하니까 두렵더라고. 요즘 계속 악몽도 꾸고 있었어, 그 때의.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곁에 없으니까, 그래서 무서웠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꺼내자 그나마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안심해하는 완다의 목소리와 모습에 비전도 절로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그는 연인의 정수리에 입술을 맞대고는 그녀의 체취를 즐겼다. 그녀 또한 싫지는 않은지 비전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방안에 둘은 그렇게 서로를 안고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아얏, 제법 혀를 섞는 정도의 키스까지 나갔을 때 그녀는 동통이 자신을 습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번에는 연인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맞대었다. 

"부탁이 있어."

"네?"

"내일 수술할때 손을 잡아줄래?"

비전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쪽 소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 ▒ ▒





"그래서 결국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는거군요."

"설마 애인이 초음속으로 대서양을 건넜을 줄은 몰랐던거죠."

토니는 헬렌에게 녹즙을 건네며 소닉붐으로 인한 각국의 연락에 얼마나 골을 썩였는지를 모른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로서도 비전이 갑작스레 나타난 것은 상당히 좋은 일이었다. 다음날 완다는 무사히 '전신마취'없이 수술을 끝냈다. 수술때마다 그녀의 주변에서 미친듯이 돌아다니던 붉은 선들도 비전이 손을 잡자 이상하게 잠잠해져서, 전의 5명의 의사들에게 악명을 익히 들었던 치과의사는 안도를 하며 무사히 오른쪽 치아를 뽑을 수 있었다.

"드디어 미네르바가 도운거지, 그렇게 되었다면 그냥 비전이 올때까지 기다릴걸 그랬어요."

그녀는 자신이 잠시 한국에 간 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사뭇 관심을 보이며 빨대를 들이켰다. 씁쓸하고 풋내가 나는 초록색 주스가 그녀의 입안에서 풍겼다. 요란한 발치수술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고보니 발치수술이 그렇게 요란하다니, 의외로 깊숙히 있었나봐요."

"응? 그야 당연하죠, 지혜의 치아(Wisdom tooth)니까."

"지혜의 치아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헬렌을 향해 토니는 턱뼈 제일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토니가 말한 바를 알아들은 그녀는 아, 하며 탄식을 했다. 마침 점검을 받으러 온 비전과 완다가 그들이 있는 연구실 바깥에 위치한 라운지 바로 걸어가고 있었다. 헬렌은 창 너머로 연인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걸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응? 그게 그렇게 웃기나?"

"하하, 딱 완다의 상황에 맞아서 그런거에요. 토니, 한국에서는 Wisdom tooth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토니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연인은 서로의 이마를 만져대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풋풋한 기운에 헬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Love tooth라고 해요. 첫사랑할때 나는 치아."










캐붕이라 해도 달달썰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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