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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생일축하썰 _ 냇배너 _ 초록빛 눈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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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생일축하썰 _ 냇배너 _ 초록빛 눈물

rabbitvaseline 2015. 11. 22. 23:41




정말로 오랫만의 늦잠이라고 협탁 위 시계를 확인했을 때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던 중이었다. 나타샤 로마노프, 아마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스파이로 불릴 그녀는 잠이 덜 깬 졸린 눈으로 낯익은 하얀색 천장을 바라보았다. 환기를 시켰는지 공기는 서늘하다못해 차가웠고 건조해서 얼굴의 피부가 당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벌써 11시가 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침대에서 일어나려했지만 피곤에 삐걱대는 몸이 온열매트에 익숙해져 그것을 거부하려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쉰 뒤, 어젯밤까지만 해도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사람의 부재를 알아차렸다. 시간이 시간이니 지금은 연구실에서 연구라도 하고 있을 터였다. 

-똥땅-

협탁 위에 올려져있던 휴대폰 액정에 문자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 뜨자,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그녀가 자고 있던 새에 들어온 문자메시지만 20건에 달했으며 친한 몇몇-특히 바튼과 로라-은 아예 전화까지 걸었던 모양이었다. 부재중 표시가 뜨지 않은 걸 보면 아마 배너가 그 전화들을 다 받았던 것 같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하나같이 그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내라는, 그런 형식적이라면 형식적이지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가 없는 말들이었다. 언제 한번 모여서 밥을 먹자고 하거나 생일선물은 이미 택배로 보냈다는 메시지도 있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그 문자들을 확인하고나서야 오늘이 자신의 생일인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메시지를 보고나서야 생일임을 깨달은 것은 사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뛰어난 스파이였고 그 덕분에 항상 임무에 쫓기는 인생을 지냈다. 그리고 그 임무들은 그녀의 생일에도 어김없었기 때문에 항상 임무중이거나 전장에서 생일을 보내야했다. 그럴 때마다 핸드폰은 언제나 집의 협탁 서랍에 보관해놓기 때문에 이렇게 생일축하메세지를 당일에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뭔가 신기한 기분이라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넘기며 다른 손으로 메시지들을 확인하였다. 

-똥땅-

액정에 또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젯밤에도 보았던 사람의 얼굴 옆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져있었다.

[일어났어요?]

급하다면 전화라도 할 것을, 그녀는 오랜만의 휴가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연인의 배려깊은 행동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답답한 것 같았다. 물론 그런 배려가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인은 너무 조심스러웠다.

[네, 방금요. 브루스는요? 지금 연구실인가요?]

메시지를 보내고 일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곧 방으로 갈거에요. 오늘 약속 있어요?]

[당연히 없죠.]

[다행이네요.]

그녀는 당장에라도 일어나서 춤이라고 추고 싶을 정도로 기쁨에 넘쳐 침대에서 일어났다. 배너가 저렇게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면, 분명 그가 데이트를 하자고 말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데이트를 계획하고 주도했던 쪽으로서, 상대방이 열성을 보이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물론 배너가 데이트를 건성으로 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먼저 나서는 일은 도통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욕실로 가서 뜨거운 물을 틀었다. 샤워기를 통해 내려오는 물들이 욕실을 수증기로 채울 즈음, 바깥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연인 특유의 끄는 듯한 걸음소리에 두근거리며 그녀는 재빨리 가운을 걸치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 ▒ ▒




"식물원이요?"

타워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면서 배너가 꺼낸 이야기는 나타샤로서는 상당히 의외였다. 그는 뉴욕 외곽에 식물원이 수리공사를 마치고 재개장을 했는데 그곳에 가지 않겠느냐는 말을 꺼내고서는 놀라는 나타샤를 외면한채 태연하게 면발을 입에 넣었다. 그녀는 피자 한조각을 들어올렸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상당히 의외로 들리네요. 저번에는 같이 과학엑스포에 가자고 했었잖아요."

"그리고 그쪽이 거절해서 토니랑 갔다가 난리가 났었죠. 그냥 재개장한다고 광고를 봐서요. 그리고 식물원은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 아니던가요?"

나타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과학엑스포에 핵물리학자와 같이 갔다가는 외면을 받을 것이 뻔했기에 거절을 했지만, 식물은 둘 다 큰 관심이 없던 분야였기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도외시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둘 다 식물을 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오히려 말려죽이지 않으려고 화분을 사지 않으니- 그렇다고 식물학에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편안히 가을의 휴일을 식물을 보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브루스가 가고 싶다면 가야죠. 나도 그런 곳은 괜찮은 것 같고."

그녀는 싱긋 웃음을 내비치며 연인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러자 배너의 얼굴에도 그녀와 비슷한 미소가 띄워졌다.



배너의 말대로 1시간동안 도로를 달리자 평원의 한가운데 커다란 유리돔이 그들을 반겼다. 새로 개장을 했다는 것을 자랑한다는 듯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대문에는 흠집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매표소에 진열되어있던 팸플릿에는 미국 내에서는 두번째로 규모가 큰 식물원이라는, 상당히 거창한 홍보문구가 적혀져있었다. 

"용케도 이런 곳을 알았네요. 이 글은 수상해보이지만."

삼각형 유리들로 이뤄져있는 돔 내부에는 전세계의 진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는 구절과 함께 구역별 지도가 그려져있었다. 입구와 곧바로 연결되어있는 중앙 담쟁이덩굴 쉼터를 중심으로 기후별로, 지역별로 구역이 나뉘어져있었다. 입구의 커다란 유리문을 지나 내부에 들어서자 그들을 맞이한 것은 그야말로 초록색의 향연이었다.

11월의 차가운 공기는 잊고 산다는 듯 담쟁이덩굴은 싱그러운 푸른색을 자처하며 쉼터 이곳저곳에 널려있었다. 자그마한 이파리들과 줄기들은 쉼터 내부에 널려져있는 기둥에 달라붙어서는 유리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어떻게든 빨아들이고 있었다. 바닥은 덩굴들이 편하게 자라라고 흙투성이에 보도블록만 깔려있어서, 배너는 나타샤가 신고 있던 부츠를 걱정해야만 했다. 젖은 흙냄새와 식물 특유의 시큼하면서도 편안한 냄새가 그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초록의 향연에 감탄하면서 어디부터 먼저 갈 것인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바깥은 많이 추우니, 이왕이면 따뜻한 곳부터 먼저가자는 말이 나왔고, 자연스레 연인들의 발길은 열대우림 지역으로 향하게 되었다. 식물원 내부에는 관리하는 직원들을 빼고는 별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막 걸음마를 뗀듯한 아이와 부모만이 느긋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배너는 제 옆에서 걷고 있는 연인의 손을 잡았다. 나타샤는 미지근하면서도 긴장에 축축해진 손바닥을 느끼면서 그의 손에 깍지를 굳게 꼈다. 나타샤, 라고 조심스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먼저 손을 내민것이 너무나도 기뻤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의 손을 굳게 쥔 채, 그녀는 열대우림관으로 연인을 끌어당겼다. 그 모습에 배너도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한바퀴를 돌고 쉼터에 도착한건 대략 4시간 뒤였다. 1시간 뒤에 폐장하겠다는 직원의 말에 그렇게나 오래 걸었던거냐며 둘은 놀라면서 기념품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른 식물원에서도 똑같이 팔듯한 허브티 몇봉과 곧 말라죽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산 화분 몇개에 배너의 양손은 어느새 종이가방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미 집으로 돌아갔는지 가족 손님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그들만이 그 넓은 쉼터를 점유하고 있었다. 직원들마저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 벤치에 몸을 앉히자마자 배너의 입에서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꽤 힘들다는 모습에 나타샤는 웃음을 터뜨렸다.

"4시간동안 계속 움직였다고요. 발도 아프지 않아요, 신발도 불편해보이는데?"

"원래 여자들은 킬힐을 신고도 달리는 종족이에요. 게다가 당신과 나의 체력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당연한 일이죠."

그 말에 배너도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자신의 체력은 그녀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을 너무나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오늘 어땠어요?"

"나름 괜찮았어요. 사람도 거의 없어서 곧 망하지 않을까 싶었지만요."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신들을 보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CCTV를 포함하고-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연인의 한쪽 뺨에 입을 맞추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키스가 끝났지만 연인의 붉은 얼굴은 하얘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배너가 무슨 짓이냐고 따지자 그녀는 아무도 없다면서 이번에는 연인의 입술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나타샤!"

"봐요, 여기 CCTV도 없다고요."

온 몸으로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연인의 모습에 그녀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결국 포기했다는 듯, 배너도 웃음을 터뜨리고는 품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었다. 고급스런 갈색 포장지에 쌓여진 상자는 그의 손바닥만 했는데, 딱 보기에도 선물이요 하는 듯한 포장이었다. 그는 수줍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선 그녀에게 그 상자를 건네었다.

"늦었지만 생일축하해요, 나타샤."

"...고마워요."

갑작스런 선물에 놀랐는지 나타샤는 주춤거리다가 그 선물을 받아들였다. 어쩐지 예상보다 시무룩한 반응에 배너의 표정이 어두워지기도 일순간, 선물 상자속 드러나는 초록색 에메랄드 목걸이에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환해졌다.

"..이건.. 설마..."

나타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전에 농담조로 초록색 보석이 갖고 싶다고 했는데-물론 초록색은 헐크의 색이므로- 그 말을 여태껏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언급하기도 싫어하는 헐크의 색이라니, 그녀는 정말로 놀란 표정으로 연인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나타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래서 이 정도는 어떨까 하고요."

"오... 정말로 고마워요, 이렇게 신경써줄줄은 몰랐어요."

"이제야 표정이 풀어지네요."

그제서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미안해요. 생일을 별로 좋아하는건 아니라서, 아 그렇다고 축하받는걸 싫어하는건 아니에요. 누군던지 생일축하한다고 말하면 고마운게 당연한거니까... 다만,"

"다만?"

"사실 내 생일은 오늘이 아닐지도 몰라요. 당신도 알잖아요, 난 레드룸에서 자랐고 거기서 스파이로 훈련되면서 길러졌다는걸."

갑작스레 바뀌어진 분위기에 배너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그것을 알아차렸으면서도 나타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에게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저항감이 있었지만 그만큼 그와의 관계가 더 깊어져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던 배너도 만류를 하지 않은 채, 나타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레드룸에서 생일은 훈련대상자가 입소한 날짜에요. 대상자, 그러니까 아이들은 짧으면 한달에 한번씩, 길면 세네달에 한명씩 들어오죠. 물론 이 이름도 진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름과 날짜가 호적상 이름과 생일이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입소기념일이 되는거죠. 물론 그렇다고해서 축하해주고 그런건 없었어요."

오히려 몇몇 아이들은 생일에 죽는 경우도 있었다. 나타샤 또한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그 친구의 생일에 죽여야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더더욱 생일이란 개념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선물은 받았어요. 1년이 지났으니 더 혹독한 훈련을 하자, 이번에는 이 사람을 죽여보렴, 이 총이 너에게는 더 맞겠다 하는 식으로요. 그래요, 내게 생일은 그런 날이었어요. 오히려 생일이 오면 힘들어지니까, 그만큼 그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랬어요. 하루하루 달력을 보다가 그 날이 오면 두려워지는거에요. 그리고 졸업하고 난 뒤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죠."

오히려 바쁜 나날을 지내면서 생일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끊임없는 배신을 일삼으며, 수많은 임무를 해내면서 생일을 잊고 지냈던 것이다.

"생일축하해, 라고 이 날에 말해준건 바튼이 처음이에요. 그 말을 들었을 때엔 정말로 놀랐죠. 내가 태어난걸 기뻐하다니, 레드룸에 대해 말을 해주었고 진짜 생일이 아닐거라고 말해줘도 그는 그래도 축하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계속 생일로 지내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솔직히 기쁘더군요. 그렇게 기쁜건 처음이었어요."

배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타샤가 이야기를 마치자 공기순환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적막속에 녹아내려갔다. 그녀가 배너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가에서, 정말 거짓말스럽게도 눈물 한방울이 떨어져내렸다.

"...브루스?"

나타샤는 정말로 놀라서 배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미국의 평범한 40대 남자가 그러하듯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글썽거린 적이야 몇번 있지만, 이렇게 눈물을 흘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타샤는 그런 배너가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다. 연인의 차가워진 손이 자신의 손을 덮었을 때엔 정말로 소름마저 느낄 정도였다. 연민, 동정같은 감정을 타인에게 받는다면 분명 불쾌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 대상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달라질 것이다.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환희가 그 속에서 모습을 비추었다. 배너의 입이 조심스레 아주 천천히 열렸다.

"나타샤, 나도 당신을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그러니까 더더욱 축하해요."

다시금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타샤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그의 눈가에 입술을 포개고는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방울들을 핥았다. 짜고 쓴 맛이 그녀의 입안에 가득 퍼졌지만 마치 꿀을 맛보는 듯한 달콤함이 이어졌다. 

고마워요, 나타샤는 배너의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그리고 더욱 더 사랑을 담아, 고마움을 담아 말했다.

"내가 여태껏 받은 생일선물들 중에서 최고에요."











나타샤생일축하해(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눈물 / 휴식 / 담쟁이 덩굴

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억지로 스토리를 꼰 것 같았지만, 역시 달달한 로맨스는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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