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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ANDALIEN
굳이 집안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더운 공기를 뚫고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4WD의 바퀴자국이 젖은 땅바닥 위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에이프릴의 말로는 아마도 다시 돌아간 모양이라고 하였지만, 깊게 파인 자국은 페달을 밟는 배너의 심장에 박차를 가한 듯 했다. 오두막 근처에 도착하여 간신히 숨을 고르자 보인 것은 우선 엉망이 된 울타리와 마당이었다. 울타리는 이미 여러 조각으로 분해된 뒤였고, 마당에는 쓰레기와 유리조각이 난무했다. “...근처에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에이프릴은 급히 주변을 살피며 배너에게 말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방안의 풍경은 더욱 살벌했다. 노트에 정리된 그의 자료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그 위로 발자국이 가득했다. 비커니 샬레니 하는 유리로 된 실험도구들은 이미..
신년을 기념하는 파티였다. 평소 A타워에서 여는 파티와는 다르게 미국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말리부 저택에서 한해의 마지막을 보자는, 가히 토니 스타크답지 않게 낭만적인 기획이었다. 그는 주최자와 함께 미리 저택에 가 있었고,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퀸젯으로 말리부까지 이동했다. 그들은 져가는 해보다 먼저 저택에 도착하였다. 나타샤, 그녀를 보자마자 남자는 반갑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짓고서는 샴페인잔을 건네었다. 태양은 그 커다란 몸을 우아하게 천천히 바다속으로 눕혔다. 그 모습에 아름다운 자태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곧 해가 떨어지는군요.""네, 착한 어린이는 잘 시간이에요."그녀는 근처에서 꼬깔모자를 끼고서는 끼익거리며 기웃거리던 더미를 흘낏 쳐다보며 말하였다. 그 말에 그는 웃음을 터..
뉴욕의 바람이 점점 열기를 띄워가는 6월의 어느 하루, 브룩클린 외곽에 위치한 웨딩숍에서는 한참 난리통이 벌어져 있었다. 설립한지 50년이 다 되어간다는, 나름 미국에서도 고풍스러운 결혼 의상을 자랑하는 숍이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한 이유는 며칠전 어느 부자가 전세를 냈기 때문이었다. 숍의 오너인 제니퍼는 40대를 넘긴듯한 중년의 남자가 30대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슈가대디들과 그들의 어린 연인들을 지겹도록 보았으니 그정도 나이차는 애교였던데에다 둘은 진짜로 연인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둘이 아이를 세명이나 데리고 온 것도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형과 누나가 유모차에서 곤히 자고 있는 동생을 보는 것이 꽤나 귀여웠던 데다가, 그녀의 숍에 오는 손님들 중에는..
메리켈의 집 주변에 형성된 군중을 보자마자 배너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켰다. 라브의 연락에 반신반의해하며 메리켈의 집에 도착한 것이 방금 전이었다. 처음 그녀의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웃으며 넘어가려 했지만,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결코 농담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메리켈의 엄마, 즉 사비나씨와 외국인이 다쳤다, 라는 말에는 어딘가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이 있었으나,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했을 때에는 도저히 그런 점을 발견해낼 수 없었다. 그는 왕진가방도 냅둔 채로 낡은 자전거에 올라탔다. 나타샤가 다쳤다는 소리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미친듯이 페달을 밟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보인 것은 집 주변에 밀집된 군중이었다. ..
최근 클린트 바튼이 제일 불만을 가질 대상을 꼽는다고 한다면, 아마 일순위는 지금 자신의 앞에서 노트북이나 두드리고 있을 약혼자일 것이다. 바튼의 사랑스러운 약혼자, 북유럽의 작은 강국 아스가르드의 제 2왕자 로키 오딘슨은 자신을 바라보는 바튼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한창 논문작성을 하고 있었다. 닷새뒤에는 졸업논문 중간결과를 보고해야 하고 여드레 뒤 부터는 지옥을 달리는 중간고사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이미 어깨 아래까지 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묶고 눈에는 안경을 쓴 채, 그는 몇시간이나 노트북에 매달리고 있었다. 로키가 앉아있는 식탁주변에는 이미 로키가 자신의 저택으로부터 가져온 책들과 서류가 한가득 쌓여있었고, 식탁 위에도 그가 보고 있는 자료들이 A4에 담겨져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
기분이 더럽다못해 시궁창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단정하다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검은 정장을 벗어던지고는 속옷차림으로 보드카를 병채로 들이마셨다.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며 모든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였던 그녀였지만, 이 숙소, 집 안에서만큼은 그 모든 것들을 던져버려야했다. 독한 보드카가 한모금 넘어가자 다시 한모금을 넘겼다. 알콜이 쓰라린 통증을 남기며 식도를 넘어갔지만 그녀에겐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더 멀쩡해지면서 자신의 실수가 머릿속에서 다시금 되새겨지다가 바스라졌다. 그 때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작전은 예상치 못한 요소들때문에 길게 늘어져갔다. 보다못한 나타샤의 후배는 자신이 상황을 보고 오겠다면서, 그녀가 채 만류를 하기도 전에 바깥으로 나..
토르 : 라그나로크 언급 有 "응, 알았어요, 내 걱정은 말라니까요. 네, 걱정말아요. 늦었어요, 이만 끊을게요. 안녕히 주무세요."호텔 창밖에 펼쳐져있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베티 로스는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벌써 사흘째, 자신의 아버지는 출장나온 딸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있었다. 미육군 중장인 썬더볼트 로스가 40이 넘은 딸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것은 단순히 그녀가 홀로 호텔방에 머무르기 때문은 아니었다. 베티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코비아 참사를 회상하는 뉴스를 보다가 이내 리모콘으로 화면을 꺼버렸다. 어두워진 화면 사이로 자신의 모습이 비춰져있었다. 한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가 아닌, 생물학에 몸을 바치기로 맹세한 과학자가 검은색 화면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녀는 다시 불..
그와 더불어 옆에 서 있던 간호사의 몸까지 덩달아 굳어지고 말았다. 마취약이 들어있는 주사기를 들고 있던 간호사는 옷 너머 복부에 드릴이 찌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의자에 앉아서 환자의 입안 상태를 살펴보던 치과의사의 목에는 메스가 겨누어져있었다. 수많은 붉은선들이 주위를 매우 거칠게 돌아다니며 둘을 위협하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 수술의 주최자이자 수술대가 위치한 빌딩의 주인인 토니 스타크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젠장, 중단합시다."비속어가 나온데다 매우 떫은 표정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옆에 서 있던 페퍼 포츠는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이런 일이 전에 4번이나 반복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까지 합하면 5번, 5번씩이나 수술은 마취 직전에 취소되었다. 더군..
비행기는 2시간이나 공항에 내리지 못했다. 고질적인 눈보라는 계속해서 남자가 탄 비행기를 상공에 잡아두고 있었다. 슬슬 위험할 것 같다는 기장의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말하였다. 그 말에 친구가 빌려주었다는 전용기는 다시금 하늘을 돌아야했다. 창밖에는 여전히 자신들처럼 착륙하지 못하는 항공기들이 갈 곳을 잃은 채 하늘을 떠돌고 있었다. 구름 아래에서는 눈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흐느끼고 있을 것이었다.“착륙허가가 났습니다. 이제 착륙하겠습니다.”방송이 끊겨진 것과 동시에 하강감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는 눈을 감고 손안에 쥐고 있던 종이쪽지에 힘을 주었다. 종이는 구겨지겠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무의미한 숫자와 글자의 조합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고 창밖을 바라보..
마음의 한가운데 01 에서 이어집니다. “오빠!”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소녀를 발견하자 비전은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분명 검은 코트를 입고 있는 소녀를 보았을 뿐인데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마치 어미잃은 고양이처럼 상처입고 웅크려있는 여자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비전의 입에서 완-이라고 소리가 나오기 전에, 세단에서 급히 뛰어나온 경호원이 소녀를 붙잡았다.“죄송합니다, 완다아가씨. 이러시면 안됩니다.”완다, 라고 불린 소녀는 비전의 청녹빛 눈동자를 가만스레 바라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묘한 순간, 붉은색의 선들이 제 머릿속을 헤집고다니다 이내 안개처럼 사그라들었다. 아가씨! 급격한 심장의 통증과 그리움에 비전이 순간 휘청거리자 또 다른 경호원이 그를 부축해주었다.“죄송합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