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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ANDALIEN
핸드폰 알람소리는 언제나 아침을 짜증나게 만든다. 흐트러진 빨간 머리를 간신히 일으키며 애덤 애플은 제대로 뜨이지도 않는 눈들을 부비었다. 머리맡에 있던 안경을 쓰고, 바닥에 떨어져있던 인형을 조심히 베개에 뉘였다. 그는 과연 오늘은 카메라 렌즈를 사겠다는 시민이 나타날까, 두근거리며 스마트폰을 켰지만 역시나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침 7시 12분, 렌즈를 팔겠다고 인터넷에 올린건 어제 저녁이었다."흐아아암-"그는 하품을 하며 뉴스라도 보려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때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침뉴스답게 집안에 침투한 좀비퇴치법같은 생활의 팁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텔레비전을 켠 채로 욕실로 들어갔다. 과연 오늘은 수염이 자랐는가를 확인하며 세수를 하려던 찰나였다. 침실 너머로 스포..
부스락거리며 몰래 움직이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나른하게 늘어진 눈을 간신히 반쯤 뜨고는 동공을 확장하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포착하려고 애썼다. 셔츠를 옷걸이에서 빼려는 모습을 보아하니 '또'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늘에서는 막 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협탁 위에 올려있던 검은 개의 스마트폰 액정이 쉴새없이 들어오는 문자로 반짝거렸다. 집안에서, 혹은 그와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가족, 동료를 부르고 있었다. 알렉스는 몇번 눈을 뜨고 감다가, 이렇게 도둑처럼 몰래 나가려는 것이 웃기고 가찮기까지 해서 몰래 침대 밑에 떨어져있던 그의 양말벨트를 집어올려 품에 안았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이 우스꽝스러운 물건을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양말을 벗길..
오늘 하루도 힘들었다고 자축하며 검은 고양이는 손잡이에 열쇠를 꽂아넣었다. 직장동료는 제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었고 그는 그것에 시달리며 지겹게 자판만 두드려댔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면 곧바로 주홍빛이 섞인 석양이 그를 반기리라 믿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어둠 뿐이었다. 물론 그는 검은 고양이이니 어둠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고 고요한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검은 고양이, 알렉산드로 토레스의 집에 허락없이 들어와도 되는 시민은 오직 한명뿐이었고, 그 시민은 가끔 이렇게 거실을 어둡게 하고는 소파 위에 널부러져 토막잠을 자곤 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더운공기와 함께 거실에서 풍겨오..
아버지의 표정이 아주 살짝 일그러졌지만, 너는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당신의 도구가 되는 것을 원했다, 라고 언제나 그랬듯 담담하게 말하는 그 투에 너는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너는 내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했는지에 대해 말했다. 한창 독립할 나이에도 독립하지 않고 당신의 곁에 남아있던 것, 굳이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에 남아 고문변호사로 남은 것, 멸시 속에서도 내가 당신만을 바라봤다는 것을 너는 목청이 터지라 크게 소리친다. 네 머리에서 열이 올랐고 꼬리는 삐쭉 솟아있었으며 귀는 한창 내려가 있다. 아버지는 그저 몇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아버지도 내가 죽고난 뒤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억지로 수면제를 먹고나서야 잠을 이루..
타앙, 총알이 두개골을 꿰뚫는다. 총성은 몇번이고 계속되었다.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앞이 컴컴해지다가 다시 밝아졌다. 다행히도 품안에 품고 있던 태블릿은 무사했다. 다시 탕,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등 뒤로 무어라 소리를 친다. 검은 고양이는 목숨이 몇개더라? 다시 탕, 탕, 탕. 몇번이고 정신을 차리다가도 이내 꺼졌다. 숨은 터져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리의 절반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눈앞에서 흐르는 피와 뇌수마저도 그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상태에서 탕, 이번에는 간신히 뛰고 있던 심장이었다. 이제 뼛조각과 뒤섞여있던 뇌수에 다시 총질을 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고양이의 시체가 자리에 남았다. 타앙, 목재에 못을 박는 소리다. 하..
꽤나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 있었을 무렵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기숙학교가 있던 곳은 겨울이 길었고 그만큼 여름이 짧았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에 위치했고 도시로 가려면 차로 너댓시간은 달려야 할 정도의 외딴 곳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감옥이라 부르며 거대한 숲에 갇힌 자신들을 비웃곤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학기에 한두명씩은 탈주하는 시민이 나오곤 하였다. 그들은 자유를 찾아 도시로 떠났지만 몇몇은 거대한 숲이라는 마물에 가로막혀 곧바로 교사들에게 발견되었고, 몇몇은 눈앞도 보이지 않을 눈보라를 헤치다가 시체가 되었으며, 아주 극소수만이 탈주에 성공하였지만 곧 그들의 부모에게 사로잡혔다. 휴대전화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보수적이고 엄격했기에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여가거리라고는 스포츠와 낚시, 책을..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에서는 연신 따가운 햇볕이 내려쬐고 있었다. 주변 빌딩가의 바닥에는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왔고, 뺨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상당한 열기와 습기를 띄고 있어 부채질도 괴로웠다. 온 몸에서는 땀이 스며나오고 있었고 덕분에 얇은 원피스에 닿는 살갗마저도 불쾌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식당이 밀집한 거리 곳곳에는 점심시간을 마친 직장인들이 너나할것 없이 부채를 부치거나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식당 문이 열리면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잠시 그녀를 더위를 식혀주다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이내 사그라들었다.그녀는 나름 괜찮다는 표정으로 편의점 얼음컵에 담긴 음료수를 빨아들었다. 분명 이 더위는 그녀가 원래 사는 곳에 비하..
1년여만에 돌아온 조국은 여전히 폐허로 가득했다. 수도 노비그라드가 있었던 곳은 커다란 구멍이 되어 있었다. 구덩이 주변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있어 아무도 그 주변에 갈 수 없었다. 가장자리에 위치한 주택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몇몇은 사고 당시에 떨어진 파편들로 인해 반파되어 있었고, 몇몇은 아예 집이 있었다는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도 어벤져스는 울트론의 손에서 지구를 구해냈다. 하지만 대신 소코비아의 시민들은 그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집과 교회와 가족들을 잃었다. 이제 내전의 상처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려하던 때였다.토니가 1주기를 추도하는 추도사를 읽기도 전에 엉망이 된 것을 보고나서 남매는 우선 그들의 부모가 묻혀져있을 곳을 찾았다. 시장에서 간신히 싸구려 꽃을 ..
썩은 계란내가 연단에서 풍겨왔다. 남매는 저마다 품에서 계란을 꺼내 던지는 사람들 틈사이에서 그 광경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던지다 떨어진 계란이 바닥에 비린내를 풍기며 깨졌다. 모두들 미리 얘기라도 꺼냈는지 모두가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썩은 작물, 계란, 신발, 심지어 돌까지. 단상 위에 올라와있는 남자의 관자머리에 돌이 스치고, 성난 시민들이 무어라 소리치자 그는 급히 로봇들의 경호를 받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애써 마련한 자리가 파토가 났지만, 사람들은 모두 추도사를 읽으려던 남자를 비웃으며 깔깔대었다. 몇몇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몇몇은 성난 고함소리와 함께 울부짖었다. "너무 어리석었어."남자를 욕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아예 구호로까지 발전되어가고 있었다. 후드티를 깊숙..
그녀의 품은 어둡고 따뜻했다. 가슴 사이에서 뿜어져나오는 향수섞인 체취와 목걸이 체인의 서늘한 기운이 그의 감각을 자극시켰다.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를 하나도 듣지 않게 하겠다는 듯, 그녀는 그의 귀를 손바닥으로 막고서는 나지막이 괜찮다고 속삭였다. 그녀의 숨결에서는 방금 마셨던 포도주의 알콜향이 나고 있었다. 그저 게임이었을 뿐이었다. 내기에 져서 벌칙을 받게 될 비전이 불쌍하다는 듯, 완다는 그를 품에 안고는 괜찮다고 속삭였다. 무엇이 괜찮다는것인지 비전은 알 수 없었으나, 그저 술에 취한 완다가 자신에게 술주정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나지막한 저음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그동안 수백번은 들어왔을 그 목소리가 그의 안에서 조심스레 어떤 파동을 갖고 울렸다. 그는 다시금 그녀의 향기를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