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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ANDALIEN
육중한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검은 고양이가 잽싸게 현관으로 들어왔다. 재빨리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대리석바닥에 발바닥을 올리자마자,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고서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의외로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어떻게 가구하나도 변한 게 없어?”그나마 변한 게 있다면 책장의 책 배치일 것이다. 그것도 집주인이 사건해결을 위해 모아두었던 자료들이었다. 알렉스는 그나마 화분의 배치가 바뀌었다고 좋아하다가 거실 한복판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여전히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거실이었다. 공중파밖에 나오지 않는 대형 텔레비전도, 물소가죽으로 만든 소파도, 주방 쪽에 위치한 커다란 창문도 모두 자신이 죽기 전과 마찬가지였다.그는 행여나 케이블이라도..
2017.4.6 [알렉스레니] 밖에는 간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의 비는 그동안 건조했던 지옥의 숨통을 약간은 틔어줄 것이었다. 비는 너무 세차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약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내렸다. 기상예보에서는 내일 아침까지는 내릴 것이라고 잘생긴 기상캐스터가 말하였다. 레널드는 거기까지 보고나서는 채널을 돌렸다. 그는 소파 아래에 앉아서는 멍하니 텔레비전 채널들을 돌렸다.밤시간대에는 드라마라던가 토크쇼나 리얼리티쇼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은 고양이 형사가 범인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지나, 겜블러가 게임을 하는 장면이 지나갔고, 이윽고 요즘 지옥에서 잘 나간다는 스켈레톤 가수를 모셔놓고는 이상한 머리를 한 주황악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도 이 지옥개의 마음을 끌만한 것은 보..
주 : 알렉스 과거 날조가 매우 심함Fallen 몇 번 죽다 살아나면 그런 일이 있다고들 한다. 몇 번이고 영혼이 몸 안을 들락거리면, 그만큼 많은 주마등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다거나 하는. 나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는데, 애당초 내 곁에 몇 번이나 죽고 살아난 검은 고양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몇 번을 죽다 살아나보니, 내 머릿속을 흐르는 필름조각들 속에서 그동안 계속해서 잊어놓고 있던 기억들이 튀어나왔다. 어느 날 맛있는 고기만두를 먹었을 때라던가 친구의 생일날 술을 마신 것 같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있는 반면, 왜 잊고 살았을까 하는 일들도 머리를 비집고 필름에 떠오르곤 한다.그리고 그 중에는 도저히 잊어서는 안되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잊어야 할..
아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오오 빛이여, 내가 그대를 보는 것도 지금의 마지막이 되기를!나야말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서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음이라. 천천히 돌아가는 원형의 판 위에는 색색깔의 플라스틱 마물들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물들 위에는 주민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앉아서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쾌한 음악소리, 아이들이 시끄럽게 웃어대는 소리. 광장 한복판에 있던 스피커에선 조금 더 차분한 음악이 흐르다가 이내 미아를 찾는다는 방송을 내보냈다.날은 눈이 부실정도로 따사로웠다.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마물을 즐기면서도 자신을 두려움과 호기심에 가득..
크리스 돈-루치아노는 지금 헬코코아를 끓이고 있다. 그는 주방에서 무언가 마실 것을 찾아 헤매다, 멸균포장된 우유와 아직 뜯지도 않아서 상자채로 있는 코코아를 발견했다. 다행히도 유통기한은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밀크팬에 우유를 붓다가 조심스레 거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성이 오갔지만 이제는 모두 진정했는지 자그맣게 대화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다시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그는 이 별장에 들어오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버지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 올라갔고, 그도 급히 그 뒤를 따랐다. 방은 그야말로 먼지투성이였고, 똑같이 그 방에 있던 시민들도 먼지와 소음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늑대인간 아이 둘은 서로를 껴안고 울고 있었으며, 레널드 헬하우스는 검은 고양이를 ..
심장소리는 꽤나 규칙적으로, 하지만 빠르게 뛰고 있다. 지옥개는 조심스레 검은 고양이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부비었다. 하얗지만 풍성한 털은 닿는 감촉이 부드러워서 몇 번이고 볼과 입술을 그곳에 갖다댄다. 그러다 심장소리는 이제 규칙적인 다른 소리로 변하고 만다. 레널드는 그 소리를 알람삼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고작 3시간여의 수면이었지만, 긴장은 한층 풀린 것 같았다. 소파아래에서 알렉스가 양반다리를 하고는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다. 화면에는 지도가 커다랗게 펼쳐져 있었고, 꽤나 힘들었는지 평소에는 쓰지도 않을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검은 고양이가 무언가를 찾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저렇게 안경까지 쓰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어딘가 그를 흥분시키는 면이 있었다..
질식사 이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아요, 약을 먹고 잠에 들면 천천히 죽어갈겁니다, 그저 잠을 자는거라 생각하면 될거에요. 할로윈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는 바퀴모양의 검은 덩어리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고양이는 어두워서 그로서는 눈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매대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이것저것을 꺼내어왔다. 먼지쌓인 약들이 그와 검은 고양이 사이에 펼쳐졌다. 이건 꿈을 꾸게 해주는 환약이죠, 원하는 시민을 볼 수 있게 도와줄겁니다, 이건 엄청 괴롭게 죽는 숯입니다, 다들 마법적인 처리를 한 것들이죠. 그러자 그는 정말로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이 환약이랑 이 숯을 동시에 쓰면 어떻게 되죠. 검은 고양이는 살짝 야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의 멀어버린 한쪽 눈가가 기묘하게 씰룩거린다. 악몽을 꿀겁니다, 여..
* 퀴어혐오워딩 有 로날드 캐머런은 아침부터 짜증나는 일만 생긴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들은 새벽부터 싸워댔고, 해골개는 뭔 일이 있었는지 아침에 신문을 다 물어뜯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보이던 토스트기는 결국 고장이 나버렸고, 화가 나서 발로 찼더니 엄한 새끼발가락만 아파왔다. 그것뿐이겠는가, 자동차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고 학교에 도착하니 짜증자는 스켈레톤 수위가 자신을 향해 인사를 했다. 물론 그는 그 가증스러운 꼬리없는 종족과는 말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평소대로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도시 외곽,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다수는 악마와 지옥개였지만 간혹 부모를 잘 만난 할로윈 아이들이 있기도 했다. 물론 그는 지옥개였고 철저한 종족주의자였기 때문..
Side A. 직사각형 화면 안에서는 다양한 시민들이 저녁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부러 뭉그러뜨린 것 같은 얼굴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할로윈을 앞두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일 터였다. 빵봉투를 들고 악마아이 두 명이 골목으로 뛰어들어가다 한 남자와 부딪혔다. 재빨리 장면을 멈추고 스크린 속을 들여다보니 얼룩덜룩한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동료에게 보여주니 드디어 잡았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증거를 잡았어,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CCTV영상을 뒤진 보람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옆에서 동료가 잘했다고 칭찬하는 소리도 무시한 채, 스크린 너머로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한 남자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동료의 말..
날씨는 겨울하늘에 걸맞게 너무나도 화창했다. 하늘은 구름한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았고 깊었다. 햇살은 따사로워서, 찬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밖에서 돌아다니기 알맞을 것이었다. 제랄드 애머릿과 폴 제머슨이 만나기로 한 곳은 교외에 위치한 허름한 카페였다. 둘은 가족들끼리 면담을 할때마다 이곳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평소 오토바이를 타는 시민들말고는 찾아오는 이가 없었으며, 덕분에 세간의 눈치를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하기 편했다고 했다. 물론 그만큼 음료의 질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애머릿은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말이다. 당장에라도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수준이라고 말이다.과연, 그의 말대로 시 외곽에 위치한 Hell’s Kitchen,의 외양은 대단했다. 이미 간판은 형편없이 녹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