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기타/DOOMSDAY CITY (42)
CATANDALIEN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차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환영은 춥다고 투덜거리면서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시동이 걸리자 차창에 몸을 기대고 게슴츠레 앞에 앉아있는 지옥개를 바라보았다.“그래서 이제부터 만나러 갈 시민은 누구야? 아까 말했던 그 선생님? 정말로 내가 진짜 나라는걸 믿지 않으려는거야?”환영의 목소리는 비꼬는 듯 하면서도 침울했다. 레널드는 브레이크를 풀면서도 이런 어둡고 가라앉는 목소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던가를 떠올렸다. 아마 알렉스의 프러포즈를 거절하고나서였던가. 자신은 농담으로 넘기려고 했었지만 검은 고양이는 진심이었던 그 고백을. 나중에 가서야 뼈저리게 느꼈던 후회가 그의 심장을 꾹 눌러댔지만, 그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히터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자 환영은..
어린 펌킨은 뒷걸음질치다 결국 쓰레기통을 엎었다. 그 안에선 온갖 패스트푸드 종이봉투가 쏟아져 나왔는데, 제대로 분리하지 않았는지 음식물이 썩는 시큼하면서도 불쾌한 냄새가 같이 일었다. 아이는 커다란 지옥개를 보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안절부절해가며 쓰레기통을 간신히 치우는 와중에 지옥개는 그 아이를 향해 앉고선 눈을 마주쳤다.지옥개의 눈동자는 마치 하늘을 보는 것처럼 파랬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아이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린 지옥개는 자신의 눈동자 색과 똑같이 파란 막대사탕을 건네었다.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아버지의 날선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아이는 급히 감사인사를 건네고는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쓰레기를 다 치웠는지 늙은 펌킨은 하수구냄새가 올라오는 낡..
검은 고양이의 뒷목에선 미미하게 화약내가 일었다. 레널드는 뽀뽀하려고 주둥이를 들이대는 고양이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다시 한번 그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현관에서 하기에는 생각보다 격한 애정표현이라 알렉스는 정말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레널드의 등에 손을 뻗었지만, 물론 연인이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의 일이었다.“아저씨, 꼬맹이도 없잖아.”“너 일하고 안 씻고 왔니?”“응?”알렉스는 정곡이 찔렀는지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물론 그는 방금 전까지 인질극이 벌어진 현장에 있었고, 무사히 사건이 수습되고 정리까지 끝내자마자 시말서와 보고서를 제출해야한다는 페터의 연락을 상큼하게 무시하고는 곧장 연인의 집으로 달려왔다. 드디어 그 하얀 꼬맹이가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알렉스는 나름 레오의 아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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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햇빛을 맞닥뜨리자 검은 고양이의 입에서 절로 하품이 터져나왔다. 그 모습에 맥켄지는 커피가 든 종이컵을 내밀었다. 커피머신에서 내린 싸구려 커피맛에 질색하면서도 알렉스는 커피를 들이키고는 다시 블라인드를 펼쳤다. 방안에 위치한 커다란 모니터에는 은행의 전경이 담겨져 있었다. 맥은 다시 영상을 앞으로 돌렸다. 복면을 쓴 남자들이 헐레벌떡 뒷걸음질을 치며 은행으로 들어갔다.알렉스는 정지버튼을 누르고는 입을 열었다.“나 서류심사 합격했대.”“어, 거기서 좀 더 뒤로... 뭐라고? 네가? 그 알렉산드로 토레스가?!”맥은 시선은 화면에 집중한 채 소리쳤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통과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말이 생각보다는 불쾌했는지 알렉스는 입을 삐죽이 내민 채로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오른편 상..
사진속의 청년은 한손을 턱에 괴고는 옆으로 앉은 채 체스에 몰두하고 있다. 케이프 사이로 하얀 셔츠와 짙은 남색 바지가 드러나 있었다. 구두를 신은 채 소파에 앉은 모습은 어딘가 무방비해보이기까지 했지만, 그것도 사진 속에 드러나는 풋풋함에 비할 바가 없었다. 지금보다는 몇백년은 젊었을, 고등학교 시절에 찍힌 사진을 검은 고양이는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주둥이가 지금보다 짧고 눈가도 더 앳된 것을 보면 분명 청소년시기의 모습이었다. 고풍스런 옷차림은 텔레비전에서나마 보았던 기숙학교의 교복임이 분명했다. 그는 얼핏 연인이 고급자제들만 다닌다는 기숙학교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저 공부와 돈과 테스토스테론의 시기였다고 사진 속의 주인공은 언젠가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에 비하자면 자신의 고등학교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레널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그가 있던,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던 골방의 문이 열렸다. 그는 한시간여만의 햇빛에 눈부셔하면서도 로날드 캐머런이 앉아있었을 자리에 시선을 집중했다.“상당히 뻔뻔한 교사군요.”“..네.... 역시 레널드씨의 말대로... 내가 저런 작자에게...”제랄드 애머릿은 더 무어라 말하려다 아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급히 말을 끊었다. 스콧은 긴장이 다 풀렸는지 소파에 반쯤 누워서는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진 아이스티를 들이켰다. 애머릿도 자연스레 소파에 주저앉았는데, 한시간여 이어진 방문동안 그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아들과 선생을 단둘이 있게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야 했다.“이제 교육청에 신고하면 되는겁니까?”“..네. 그리..
이틀동안 숙성했다는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썰다가 알렉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드레스코드가 엄격하기로 소문났지만 실력 또한 그만큼 소문난 레스토랑에서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냐는 연인의 푸념소리가 떠올랐지만, 사실 더욱 더 맛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연인을 만나기 전까지 이런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경우래봤자 1년에 단 한번, 즉 자신의 생일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생일에 관한 생각에까지 옮겨가게 된 것이다.“생일이 이 세상에 태어난걸 기념한 날이라면 검은 고양이는 생일이 9개겠네?”과연 스테이크를 부드럽게 잘렸고 핏기가 가시지 않은 고기는 탄력이 넘치면서도 혀를 즐겁게 해주면서 목 너머로 넘어갔다. 알렉스는 완벽하게 육즙을 사로잡은 기술에 감탄하며, 차마 수다를 떨 생각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독한 담배냄새가 코를 찔러 상당히 신경질을 냈었댔다. 베란다를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짜증을 내며 냄새의 주인공에게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걸레로 제 이마 한편을 누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잿빛 연기가 흘러나왔다. 미안해, 사과하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가라앉아 있다. 원래부터 침울해보이던 표정이 더더욱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저씨? 걸레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제압하고 나서야 그는 왜 지옥개가 형편없이 걸레로 제 이마를 누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마께 뒤엉켜버린 털속에서 상처가 형편없이 벌어져 있었다. 걸레의 시궁창냄새..
육중한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검은 고양이가 잽싸게 현관으로 들어왔다. 재빨리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대리석바닥에 발바닥을 올리자마자,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고서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의외로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어떻게 가구하나도 변한 게 없어?”그나마 변한 게 있다면 책장의 책 배치일 것이다. 그것도 집주인이 사건해결을 위해 모아두었던 자료들이었다. 알렉스는 그나마 화분의 배치가 바뀌었다고 좋아하다가 거실 한복판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여전히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거실이었다. 공중파밖에 나오지 않는 대형 텔레비전도, 물소가죽으로 만든 소파도, 주방 쪽에 위치한 커다란 창문도 모두 자신이 죽기 전과 마찬가지였다.그는 행여나 케이블이라도..